🎨 언젠가 해주고 싶던 이야기야

은비

🏃🏻‍♂️ 최상의 마침표를 찍는 방법

세원

  삶에서 결과와 과정 중 더욱 중요한 게 무엇이냐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삶을 건너오며 가지게 된 가치관이나 신념에 따라 해답과 해설이 천차만별로 갈릴 것이다. 아니면, 상황에 따라 중요하게 다루는 지점을 다르게 여겨, 한 번에 답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살짝 바꾸어 보겠다. 당신은 결과에 도달하는 것에 집중하는 통에, 중간 과정에서만 얻을 수 있는 가치를 놓쳐 버린 적이 있는가? ‘바쁘다, 바빠!’ 현대 사회에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급급해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피부로 체감할 여유도 없으니, 아마 누구나 이런 경험은 한 번쯤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책이나 드라마 같은 창작 콘텐츠를 감상할 때 줄거리나 결말만을 찾아보는 것도 이에 해당할 것이고, 타인에게 보여줄 만한 좋은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행위도 마찬가지겠다. 물론, 콘텐츠가 차고도 넘치는 이 세상에서 죽기 전까지 다 볼 수 없는 양의 작품이 있으니, 취향에 안 맞을 것같다면 겉핥기식으로 작품을 접할 수도 있는 노릇이고, 누구나 좋은 결과를 원하니 성취를 위해 일정 범주 내에서 이것저것 다 시도해 보는 것 역시 비난을 받을 만한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편법으로 얻어낸 것들이 진정으로 ‘나의 것’이라 말할 수 있을까?

  화룡점정(畵龍點睛)은 훌륭한 용 그림에 마지막 단계로 눈동자를 찍자, 그 용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져 하늘로 승천했다는 옛이야기로부터 탄생한 고사성어이다. 개중 점(點)은 어떤 일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요긴하게 다뤄지는 마지막 단계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 마지막 한 방을 통해 완벽에 완벽을 더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중요해 마지않는 ‘점’을 찍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필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를 통해 완벽해질 수 있는 좋은 ‘과정’이다. 본디 좋은 점프를 하기 위해서는 좋은 도움닫기가 필요한 법이며, 인생이라는 한 권의 책에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침표 그 자체보다 마침표를 찍으러 나아가는 여정이 중요한 법 아니겠는가.

  결과는 그 자체로 완결된 것이 아니다. 살아 움직일 듯 정교한 비늘 하나하나를 먼저 그려내지 못한다면, 마지막 눈동자를 잘 찍더라도 그것은 진짜 용이 될 수없다. 반대로, 아무리 수려하고 아름다운 용을 그려 놓아도 눈동자를 제대로 된 곳에 그려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훌륭한 그림과는 거리가 멀 것이다. 결국, 그둘은 애초에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간 눈에 보이는 결과를 손에 거머쥐기 위해 그 결과를 만드는 마지막 과정에 집중하느라 그 전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등한시해 왔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하여 준비하는 동안 근육이 붙은 나의 몸, 이전보다 좋아진 지구력이 한순간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결과는 요행일 수 있지만 좋은 과정은 요행일 수 없다. 그러니 결과까지 가는 마지막 한 걸음 또한마지막 ‘과정’에 불과하므로, 결과는 성실하게 반복되는 과정에서 피어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는 세상 물정에 어두운 사람의 한갓진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사회적 동물로 살아가며 인정욕구를 아주 배제하고 살기란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이야기고 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누군가에게 그럴싸한 결과물을 보여야 한다는 것 정도야 다들 아는 이야기니까. 하지만 그 욕구는 밑 빠진 독과도 같아서, 남들이 아무리 물처럼 들이부어도 결단코 가득 찰 수 없다. 그 허기는 오로지 나만이 달래줄 수 있다. 남들이 볼 수 없는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발버둥 치고 애썼는지, 그 일이 얼마나 찬란하고 빛나는지 알 수 있는 나만이.

 🌥️ 한 번의 붓질, 한번의 붓질

윤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형태로든 전해지는 말이 있습니다. 곧 세상사 쉬운 일 하나 없고 인생사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유난히 그런 날이 있습니다. 뭘 해도 안 되고, 해서 세상이 원망스럽고 하늘이 무심한 그런 날이요. 그럼에도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흘러가는 세상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듭니다. 달리 생각해 보면 웃긴 일입니다. 남이 물에 빠졌을 때는 애써 못 본 체하면서, 자신은 온갖 불평불만을 다 한다니. 저는 아직도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인생이라는 드넓은 바다를 헤쳐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눈에는 도로에 고인 웅덩이와 같다 할지라도, 나에게는 수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와 같습니다. 격랑의 파도 속에서,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향을 잃은 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가며. 그저 앞만 보고 내달렸는데, 숨이 차서 돌아보니 여긴 어디요 옳게는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애초에 목적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산다는 게 참으로 고된 일입니다. 아하, 이제서야 부처의 말이 이해가 갑니다. 깨달은 자는 고개를 뒤로 젖혀 미소를 짓는다더니, 곧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고 이상의 세계만을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누군가는 인생에서 고통이 상수고 행복이 변수라고 합디다. 어째 나의 아픔에 한 번 발걸음 멈추지 않고 제 갈 길만 가는 세상을 보노라면 충분히 그리 말할 법합니다. 그러나 나의 질문은 과연 그 해결책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것인가’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네 인생은 살아 무엇하단 말입니까. 속된 말로 죄다 주님 곁으로 가면, 힘든 일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흔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 합니다. 그러나 중이 떠나 빈 절은 곧 폐가와 다름없습니다. 인생에 싫증을 느껴 냅다 떠난다면, 그 뒤에는 도대체 무엇이 남는단 말입니까.

  우리네 인생은 마치 호쿠사이의 그림과 같이, 하늘을 탐하듯 휘몰아치는 파도와 어떻게든 살아보려 몸을 넙죽 숙인 인간의 대결입니다. 초상지풍이면 필언입니다. 거센 바람이 불면 풀은 눕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수지풍중이면 초부립,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섭니다. 보기보다 질겨서 불어오는 바람을 버텨내고, 잠시 누웠다가도 다시금 일어섭니다. 그렇게 거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따스한 볕이 들기 마련입니다. 무거운 비구름 지난 뒤 눈부신 태양이 뜨듯이. 추운 겨울이 지나 다시금 봄이 오듯이. 만사는 돌고 돌기 마련이고, 그렇게 우리 삶은 꾸역꾸역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요인 즉, 나의 짧은 결론은 우리네 인생이 무한정 고통스럽지만은 않더라는 것입니다. 가끔은 웃음도 나고 행복하기도 하더라는 것입니다. 세상사 흥망성쇠의 반복이듯, 인생사 또한 좋고 나쁜 일의 반복이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무심할 뿐이지, 어떻게든 내게 고난과 역경만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 추억과 즐거움 또한 함께 흘려보낸다는 것.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기고 그런대로 사는 것. 안 좋은 일 생기거든 흘려보내고, 좋은 일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 그렇게 깨달은 자는 고개를 숙여 미소를 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