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은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남아있다.

아직도 난 놓아야 하지만 놓고 싶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을지도.

그러한 사랑 투정.

 사랑과 증오는 서로 정반대 같지만, 그 둘 사이의 경계는 아주 모호하다. 그 가운데에서 심술을 부리는 감정이 바로 애증. 언제든 증오 혹은 애정으로 변할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으니 무시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부단히 버티고 있다. 애증은 아주 꼬여있고 그만큼 복잡한 감정이다. 그럼에도, 그 실타래의 시작점은 사랑을 향함이 분명하다. 사랑은 기대를 낳고, 충족되지 못한 기대는 실망을 낳는다. 실망이 쌓이면 애정 섞인 미움이 싹트는 것이다.

  분명 이 사람을 사랑하는데, 오래도록 미워한 전례 없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건, 아마도 내가 그 사람을 무척, 무척이나 좋아한 나머지 덜컥 미움이 자라났기 때문이겠다. 항상 아쉬워 기다리기만 하는데 그 대상은 날 찾지 않을 때. 은연중에 그 사람을 뒤쫓는 자신을 마주하면 꽤 서럽고 씁쓸한 마음이다. 유치하게도 “난 너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아.”라고 부정하며 뒷걸음을 쳐보지만, 결국엔 내 사랑이 너의 사랑보다 한참 크다는 것을 알고 만다. 못내 아쉬워 먼저 두드리는 건 나니까. 그렇게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에 공백이 반복되면 문득 그 빈자리에서는 미움이 쿡쿡 자라난다.

  그럼 그 사람을 온전히 미워할 수 있는가? 그건 또 아니다. 사랑에서 비롯된 증오가 사랑을 떼어내고 우뚝 솟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린 애증을 할 때, 한껏 미워하고 증오할 수도, 끝끝내 정을 떼버릴 수도 없다. 뾰족해진 미움을 다 써버리면 모두 뭉뚝히 닳아 둥글어지지는 않을까. 심술을 이리저리 헤집고 헝클이더라도 사랑은 자꾸만 걸림돌을 둔다. 미움은 또 모른 척 걸림돌에 걸려주는 것. 증오가 잠시 주저앉으면 사랑은 헐레벌떡 나를 끌고 그 사람에게로 생각을 누인다. 잊고 싶지만 기억하고 싶고, 보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이 날 조금은 생각해 줬으면 하는 이런 모순된 바람들을 가득 안고 말이다. 고작 내가 반항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사람이 올린 게시물에 좋아요 눌러주지 않기, 그 정도뿐. 잔뜩 원망해 보려 다짐해도 사랑하는 마음에 언제나 져버린다.

  이런 점에서 애증은 너무 사랑한 나머지 미움까지 데려오는 정말 한 끗 차이의 불편한 감정이다. 만일 사랑이 이보다 더 적어서 너의 것과 균형을 이루었다면, 오가는 사랑의 양이 똑같았다면. 애초에 그토록 상처받지도, 사랑에 미움이 섞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다지도 서러운 사랑 역시 아니었을 것이다. 애증은 오가는 사랑이 같아질 때까지 자리를 잡고 마치 영원할 듯 뭉그적거릴지도 모른다. 애증을 없애고 싶다면 두 사람의 작용에서 생기는 공백을 줄여야 한다. 결국, 내 사랑을 그 사람의 마음만큼 줄여야 한다는 말이다.

  근데, 사실 이 불균형의 모순을 해결할 가장 심플하고 낭만적인 방법은 덜 사랑하는 쪽이 더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물체들도 다 같은 힘을 주고받는다는데. 왜 사랑엔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가는 사랑이 고우면 오는 사랑도 고와야 하는 걸 왜 몰라. 사랑에도 보이지 않는 과학적 원리가 필요하다고 소리쳐보지만 아쉽게도 사랑의 제3법칙을 만들어줄 사랑계 뉴턴 같은 사람은 아직 없다. 그러니, 사랑을 자르고 재단할 수밖에. 기대를 줄이고, 부푼 마음을 꾹꾹 눌러 바람을 빼버리면 미움은 날아가 조금은 작아진 사랑만 남을지도 모른다. 엇나간 균형이 맞춰지는 과정이 너무 아프지 않길, 그 따뜻한 허전함 속에 나만 너무 홀로 남겨두지 말아 주길. 여전히 놓지 못하는 것들을 사랑하며 미워하는 나는, 그럼에도 또다시 작은 바람을 실어본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도 먼

  

  사랑과 미움, 존경과 두려움. 하나만으로도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을 두 개씩이나, 그것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니. 사랑하면 사랑하는 거고, 미워하면 미워하는 거지. 말로만 들으면 공존할 수 없을 것 같은 감정들과 함께 우리들은 살아가고 있다.

 

  가끔 그런 순간이 있다. 세상이 너무나도 고요해서, 나의 모든 행동이 아주 크게 느껴질 때. 내가 내뱉는 숨소리가, 마루 위를 스치는 발소리가, 사락거리는 이불 소리가 이렇게까지 컸나. 새삼스럽게 내가 나의 인생을 일인칭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지고. 세상이 조용해진 뒤에야 스스로의 실재를 겨우 느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어쩌다 ‘나’라는 존재가 이곳에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나, 싶다.

 

  그렇게 ‘나’라는 사람은 모순적이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어야, 그들과의 비교를 통해서야 하나하나씩 정의되기 시작한다. ‘활발하다’. ‘활발함’이라는 것은 어떤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일주일 내에 집에서 반경 5km 밖의 공간을 5회 이상 이동하는가?’라는 질문에 (힘차게, 팔을 몸 앞으로 굽히며) yes라고 답을 해야만 ‘활발함’이라는 성격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성격을 한 줄로 세운 뒤, 순위를 따져본다. 그들 중 얼마나 삶에 기운이 넘치는지, 모험을 두려워하지는 않는지,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결국에 ‘나’를 설명하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떻게 해야 나는 ‘나’를 제대로 알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 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서 딱 떨어지게 설명하기 어렵다. 밴드 음악을 좋아하고, 너무 단 군것질은 싫어하고, 독서가 취미이다. 그러나 시끄러운 곳은 피하고, 가끔은 초콜릿을 <마틸다>에서 나온 학생처럼 쌓아 두고 먹을 때도 있고, 2주가 넘게 책을 읽지 않은 적도 많다. 그래서 나는 내 성격을 설명할 때가 주어진다면 ‘모순’이라고 말한다. 이런 면도 ‘나’고, 그와 상반되는 면도 ‘나’라서, 한쪽의 어떤 것이라고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 면만 본 그 상대가 나를 쉽게 특정 짓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오해가 생길까 두려워하는 마음이다.

 

  종종 타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나를 전해 듣게 된다. 있잖아, 민형아, 너는 제법 냉소적인 것 같아. 내가 생각해 왔던, 그리고 그려왔던 ‘추구미’와 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때 나는 그것을 경계한다. 그 사람이 아닌 나를. 사실 내가 아니라,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그가 나를 더 잘 아는 것이 아닐까? 벽면이 허물어지고 지인 모두가 짠! 하고 나타나 나의 트루먼쇼를 축하해주는 것과 같은 말들을 듣고 나면 내가 아는 ‘나’는 점점 사라진다. 그렇게 나는 나의 모순들을 등에 잔뜩 업은 채, 살아가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는 ‘단 것을 싫어하는 나’, 왼쪽 어깨에는 ‘초콜릿을 많이 먹는 나’를 매단 채. 어디 가서 좀 살았다고 헛기침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정의 내린 삶은 이렇다. 다양한 나와 만나고 이별하는 것. 애증과 경외처럼 그것이 함께 있는 것이 말도 안 되고 어색해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이 함께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앗, 혹시 이러면 ‘삶’이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지, 그도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테니.

 

여전히 알쏭달쏭 애증과 경외...🧐

애증과 경외에 담긴 두 가지 감정을 그림으로 재조립해보았는데요,
 감정풀이에 진심인 에디터들, 예술혼을 불태웠습니다,,🔥

 비슷한 듯 다른 듯 참신한 감정 그림들,  함께 구경해볼까요?😎

사랑 -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원망 - 추적추적 비 내리는
애증 - 옥타곤 위에서 싸우는
존경 - 창공을 높이 나는
두려움 -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한
경외 - 저 멀리 존재하는

사랑 - 지금은 힘들지 않아요
원망 - 자꾸만 떠오르는 건 어떡해요?
애증 - 나쁜 거 알면서도 베어물고 말아

존경 - 우러러봄에 한 점 부끄럼없기를 
두려움 - 저, 수영 못해요
경외 - 어느 쪽이 진짜인지, 다가설 수 있을까?

사랑 -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원망 - 미움은 파도처럼 몰려와
애증 - 튕겨져 나가도, 돌아와줄거지?
존경 - 내 세상에서 가장 밝은 것은
두려움- 사실 난 아직 완성되지 않았는데

경외 - 닮고싶지만 할 수 없을 것 같아

사랑 - 자꾸만 질문이 생겨요
원망 - 차라리 모를 걸 그랬어
애증 - 바보야, 보고싶어
존경 - 입이 떡 벌어져요
두려움 - 숨이 턱 막혀와
경외 - 우리 분명 같은 시간에 살고 있는 거 맞지

사랑 - 주의: 완벽하고 싶다면, 점선을 따라가세요. 
원망 - 불쑥 튀어 나온 못된 마음이
애증 - 사랑 틈에 들어올 미움 모집합니다!
존경 - 나한텐 없지만 나도 갖고 싶은 걸. 
두려움 - 좁은 시야. 흐려진 판단력.
경외 - 우리는 동떨어져 있지 않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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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지의 네 번째 뉴스레터, 즐거우셨나요? 

향기로운 꽃이 가득하던 오월🌸에 시작해,

쌀쌀한 바람에 옷을 여미는 겨울⛄을 맞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