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난감

뾰족한 물방울

🐾 낙관주의자도 한 걸음부터

민형 

  왜 항상 시험 기간에는 날이 좋을까? 내 마음은 이만큼 어두컴컴한데 어쩜 이렇게 하늘은 더 파란 건지, 오늘따라 왜 바람은 또 완벽한지. 그래서 낙관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그런데 어떻게? 나만의 백과사전, 나무위키에 검색하니 3번 항목이 친절하게 방법을 설명 해준다.

☑ 주변에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둔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제일 낙관적인데. 잠시만, 낙관적인 것이 뭐지? ‘낙슈탈트 붕괴’가 와서 서둘러 검색창에 ‘낙관’을 쳐본다. ‘낙관’은 인생이나 세상을 긍정적이게 보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정신승리’로 둘러댔던 것들이 이제 보니 낙관적 태도였다. 민형 뒷걸음질 치다 낙관을 잡아버렸다. 나는 많은 체력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다. 기뻐하는 데에도 모자란 것을 아깝게 화나는 일에, 짜증 나는 일에 쏟는 것은 너무 낭비 아닌가? 그냥 한번 “너 이 자식!!” 소리쳐주고 잊는다. 뇌주름 속 단기기억에 그들을 스치게 하는 것만으로도 싫으니까. 다들 날 곁에 두어야겠는걸. 으하하!

☑ 긍정적인 경험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작년, 소유욕이 없던 내가 원하는 것이 생겼는데 바로 책이었다. SNS에서 화제라는 비문학의 내용은 몰라도 갖고 싶고, 출판사의 잡지들을 구독하고 싶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릿터였다. 민음사에서 격월로 내는 문학 잡지인데 책은 물론이고 다양한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것이 좋았다. 그런데 나는 ‘무지출 챌린지’를 밥 대신 먹는 하루살이였고, 그런 나에게 8만원의 구독료는 사치였다. 그렇게 몸도 마음도 빈곤하게 살던 어느 날, 학교 도서관에 갔는데 잡지 칸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하나하나 살폈는데 릿터도 있었다! 그렇게 격월마다 행복하게 학생복지를 누리던 중 얼마 전 릿터에서 읽은 ‘낙관’과 어울리는 문장이 있어 공유한다.

 ‘저 스스로를 끝없이 북돋우면서 결국은 계속해서 써 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게 되었고요. 너는 누가 읽어 주지 않아도 이미 작가이고, 꼭 작가가 아니어도, 네가 바라는 존재가 되지 않아도, 이미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요.’

☑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 긍정적인 면을 찾아보려 노력한다.

 등교길에 스타벅스가 2개나 있다. 매실 피지오가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한 잔에 30분 노동이 사르르 녹을 것이라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쥐며 한 달 동안 참았다. 그러나 오늘, ‘요리왕 비룡’의 장면처럼 머리에 번개가 꽂혔다. 그래, 오늘이다. 종강도 했으니 6300원 쯤은. 그런데 매장 입구에 붙어있던 포스터가 안 보일 때 불길함이 고개를 내밀더니, 어라라 단종이란다. 저한테 상의 한 마디 없이 단종시키는 게 어딨어요. 오는 내내 나의 위를 하트 곤약펄 모양으로 예쁘게 만들었는데 곤란했다. 그러다 눈에 밀크티 블렌디드가 들어왔다. 전에 먹었던 밀크티가 제법이었어서 궁금했는데 마침 잘됐지 뭐. 역시 스타벅스 밀크티의 달콤고소한 맛은 그대로였고, 시원한 얼음이 와작 씹혀 더운 여름에 딱이었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슬러쉬를 먹고 싶었는데, 이거 완전 럭키비키잔앙ꕤ

 다들 이 방법으로 낙관주의자가 되어보자. 그냥 그게 기분이 좋으니까. 나는 덕분에 척척낙관박사가 되었다.

🍀선난감후낙관

민주바라 

 난감과 낙관은 연속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방향성에 따라 결과는 달라지겠지만요. 낙관에서 난감으로 향하면 흑역사가 되고, 난감에서 낙관으로 흐르면 무사하고 재밌는 순간이 되는 것처럼요. 제 인생의 추구미는 아무래도 ‘선난감 후낙관’ 쪽입니다.

 열심히 돈을 벌어서 제 첫 기타를 장만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괜찮은 중고매물을 찾아서 큰 맘 먹고 저 멀리, 처음 들어보는 역까지 열심히 달려갔습니다. 거래 시간은 여덟 시 반, 큰 연락이 없어 불안한 마음에 다섯 시쯤 연락을 넣어봤지만 묵묵부답. 쎄한 예감은 왜 한 번을 틀리지 않을까요? 알지도 못 하는 역에서 1시간을 꼬박 기다렸습니다. (기대감에 30분 일찍 도착한 제 설레발 30분이 포함된 시간입니다.)

 어안이 벙벙한 저 대신 잔뜩 화가 난 남자친구의 조언대로, 제가 노쇼를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자료들을 남길 준비를 했습니다. 제가 중고거래를 했던 이 플랫폼에서는, 노쇼도 신고를 하면 조치를 취해 주더라고요. 제 잃어버린 1시간과 속상함이 조금, 아주 조금은 해소될 가능성이 보였습니다. 오히려 좋았죠. 거래하기로 한 역사 명과 현재 시간, 그리고 제 전화번호와 ID가 한 프레임에 보이게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기고, 따로 플랫폼 내에서 신고를 해야 했습니다. 다만 회사에서 바로 뛰어오느라 종이와 필기도구 하나 없는 제가 증거사진을 뭘 어떻게 찍을 수 있을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화장실 앞 간이벤치에 걸터앉아 우두커니 있다가, 마침 제 가방 속 아이라인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판기에서 굳이 천 원 주고 부드러운 티슈를 사고, 그 고급 휴지에 아이라인으로 제 정보들을 북북 써내려갔습니다. 집에 가는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는 정신없는 역사 안에서 저는 휴지 들고 열차 도착 정보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일련의 상황이 그저 너무 재밌었습니다. 아무래도 종이가 없어서 아이라인으로 필기하는 제 모습이 가장 웃겼고, 고심해서 고른 기타를 거래할 때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꽤 나쁜 변수가 실현된 게 신기했고, 기타를 잘 모르는 제게 더 많은 기타를 볼 기회가 생겼다는 안도감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이 얘기를 어딘가에서 하게 될 것만 같다는 기대감과 짜릿함도 분명히 있었고요.

_

 제가 선난감 후낙관 스탠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던 것은 제 안에 깊이 자리잡은 방어기제에서 시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난감함을 넘어선 공포스러운 상황을 애써 모면해보려는, 저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낙하산을 펼치는 행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둥실둥실 떠 다니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이유 때문에 ‘오히려 좋아’를 외치고 있는 걸까?’

 그래서 그 ‘좋은 게 좋은 이유들’에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습관적으로 제 상황 안에 숨어 있을 다양한 감정들을 찾아내려 했습니다. 걱정과 불안 같은 것들이 묻히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선난감 후낙관 매커니즘을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

“예기치 못한 상황 😮 – 난감함 😣 -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새롭다는 것 😏 – 새로운 상황에 대한 설렘 / 반대의 것을 따라가고 있다는, 모순에서 오는 짜릿함 / 위기를 잘 넘긴 스스로가 너무너무 대견함 🍀❤️”

 지구는 둥글고, 사람은 입체적입니다. 감정도 한 면의 감정만으로 존재하지 않죠. 납작한 부분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 이치 덕분에, 저는 우연히 맞닥뜨린 난감 하나를 데굴데굴 굴려봅니다. 그러다 보면 제가 느끼고 있는 여러 감정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난감은 더 이상 ‘난감’만으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죠. 난감 구석에 작게 붙어있는 설렘을 찾았고, 한 발짝 떨어져서 보면 보이는 약간의 자조 섞인 재미를 발견합니다. 제가 굴리고 있는 이 난감이 제게 익숙해질 즈음이면, 안도감이 저를 향해 다가옵니다. 어느 지점이 되면 난감한 마음과 친해져 있는 제가 자랑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제가 새로 마주한 모든 감정들은 저를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만들어줍니다.

 낯섦에서 기인한 불안한 감정을 계속해서 다루다 보면 항상 그 끝은 낙관으로 귀결됩니다. 낯선 것들을 계속해서 보다 보면 익숙해지고, 익숙함은 곧 편안함과 즐거움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감정을 들여다보고, 구석구석 숨어있는 이름모를 감정들을 찾아내다 보면 결국 뭐든 괜찮아지는 제 ‘선난감 후낙관’ 매커니즘이 꽤 마음에 듭니다. 여러분도 난감을 요리조리 굴리고 다듬어보면서 즐거움까지 다다르는 여정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요?